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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천일기도 회향하고, 인도 순례 갑니다. 등록일 2023.11.16 16:32
글쓴이 雲月野人 조회 8
천일기도 회향하고, 인도 순례 갑니다.


그동안은 참 미련하게 보냈었나 봅니다.

무턱대고 앞 만 보고 달여 왔나봅니다.
수행자로 산답시고 글 나부랭이 올리면서
부처님의 제자로서 어찌 부처님의 고향을 못 갔을까요?

못 간 것이 아니라
어쩌면 부처님 성지 갈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다는 겁니다.

부처님의 고향을 가보지도 못하면서
무슨 부처님 말씀을 매일 올리고 있었는지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이번에 천일기도를 끝낸 후
21일 동안 보궐기도하면서 많은 깨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2월 5일 출발해서
12월 14일 귀국하는 일정으로 순례일정 잡혔습니다.

아마 이번 천일기도에서
필시 부처님 고향 가보라는 의미로 인도순례가 인연지었나 봅니다.

인도,
쉽게 갈 수 없는 인연들 속에서
필연으로 이어진 사람만이 가 볼 수 있는 인연국입니다.

어찌어찌 하다가 이 시절인연이 되려고
드디어 인도 땅을 부처님의 가피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인도순례는 불자로서 혹은 승려로서
꼭 한 번은 보아야 할 시절인연으로 귀한 불은佛恩 덕이라 봅니다.

아직 두 분 정도는 가능할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아래의 인도에 대한 참고 읽어 보시고
여행사 연락처도 남겨 드리겠습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인도印度


기후 :
남북의 길이가 3,219㎞에 달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상당한 기후 차이를 보인다. 전반적으로는 몬순기후를 보이나 남인도의 경우 1년 내내 열대기후를 나타내고 히말라야 지방의 경우는 1년 내내 춥다. 보통 2월중순-3월은 봄, 4-6월은 여름, 10-11월은 가을, 11월 중순 -3월은 겨울이며 6-9월에는 우기가 있다.

아그라 (Agra)
타지마할의 도시로 온 세계에 널리 알려진 곳이다. 아그라는 16-17세기에 걸쳐 약 100년간 무굴 제국의 수도로서 영화를 누렸다. 아그라는 델리 남쪽 200km 정도 떨어진 야무나 강 유역에 있는 인구 약 80만의 도시다. 시가지는 타지 마할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와 시민의 생활의 장인 북부로 나누어진다. 아그라는 델리․자이푸르와 함께 이루는 ‘황금의 삼각형(Goldem Triangle)’에서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1.타지 마할(Taj Mahal)
타지 마할은 샤 자한이 17번의 결혼 기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번째의 아이를 낳으려다 1629년에 세상을 떠난 부인 뭄타지 마할을 추모하여 만든 무덤이다.1631년에 짓기 시작하여 22년만인 1653년에야 완공된 이 건물의 정면 마당에는 수로를 둔 전형적인 무굴 양식의 정원을 두고, 좌우로는 회교 사원과 회당을 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사랑을 위한 불멸의 금자탑은 이란의 쉬라즈 출신인 우스타드 이샤에 의해 설계된 것인데, 그의 설계대로 만들기 위한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차출된 장인들을 포함하여 2만 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건축을 위한 자재로는 운반을 위해 1,000여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되어야 했던 라자스탄 주의 마크라나에서 채취한 대리석을 비롯하여 건물 안의 세세한 장식을 위하여 러시아와 중국 등지에서 수입해야 했던 여러 가지의 돌이 사용되었는데,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준비 과정과 장인들을 동원하여 만든 타지 마할의 건축비는 당시 돈으로 500만 루피였다고 한다.


바라나시 (Varanasi)
바라나시는 카시라고 하는데 (영적인 빛으로 충만된 도시 ) 이 도시에 년간 100만명이상의 순례자가 방문한다. 이 순례자 중 죽음을 목표로 하는 사람도 있다. 3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힌두 성지 중의 성지로 쉬바신의 성도이다. 힌두교의 대표적인 성지 바라나시는 갠지스강을 끼고 형성되어 있다. 도시의 거리는 미로와도 같고 힌두교의 성스러운 동물, 소 때문에 사람들의 길 찾기는 더욱 힘든 거리로 양편 가게에는 신에게 바치는 꽃이나 공물, 제례 때 쓰는 빨간색이나 오렌지색 가루, 향기 진한 향을 파는 소리가 요란하다. 일생에 한 번 바라나시의 가트(사람들이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계단, 일종의 공동 목욕탕)에서 갠지스 강물에 몸을 씻으면 보다 낳은 내세가 약속된다는 신앙 속에서 여자들은 옷을 입은 채 강물에 몸을 씻고 남자는 강속에서 요가의 자세로 명상에 잠기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죽은 사람이 화장되어 그 재가 강물에 뿌려지기도 한다.

사르나트 (Sarnath)
사르나트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드가야에서 성도한 다음 처음으로 설법을 한 곳이다.
보드가야에서 300km걸으셔서(가야, 라즈기르, 나란다, 파트나, 바라나시 순으로) 깨달음을 얻은 후 칠,칠일 만에 부처님께서는 이곳을 찾아 최초로 4성제 및 8정도, 중도의 법을 설하여 교진여 등 5비구를 제도한 장소(차우칸디 스투파)로 한역으로 녹야원이라고 한다. 녹야원에 도착한지 3일째가 되는 저녁, 계속 침묵만을 일관하시던 부처님께서는 그 이전 1000분의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던 곳, 현재의 다메크 스투파(탑) 자리에 앉아서 다섯 제자들에게 최초의 법을 설하시게 된다. 그러자 그때 부처님 주위에는 구류손불 및 구나함불, 가섭불 등 현겁의 부처님들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애워 쌌으며, 삼천대천 세계가 흔들렸다고 한다. 이곳 녹야원은 5비구를 비롯한 야사등 많은 제가자의 출가로 불,법,승 삼보가 이루어지고 비구니를 제외한 우바새, 우바이가 처음 생긴 곳이기도 하다.

보드가야(BUDDH GAYA)
부다가야 주변은 부처님이 성도하시기 전 6년간 고행하신 곳이며, 부처님이 성도하신 곳이며, 성도하신 뒤에 교화하여 1,000명의 제자를 한꺼번에 두게 된 곳으로, 이곳은 가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나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 하여 특별히 보드가야(혹은 부다가야 BUDDHA GAYA)라고 부르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여기서 6년간 정진을 하시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시게 되었다. 성도 후 7/7 선정에 드신 후, 옛 도반인 5비구를 찾아 서북쪽으로 가셔서 바라나시 근방에 있는 사르나트에서 5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시고 다시 부다가야로 돌아와 가섭3형제(우루벨라가섭, 나디가섭, 가야가섭)을 교화하신 곳이기도 하다.
1. 마하보디 대탑 (Maha boddhi Temple)
한역(漢譯)으로는 대정사(大精舍) 또는 대보리사(大菩提寺)라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곳에 세워진 높이 52m의 9층 대탑이다. 동쪽 입구로 들어가면 정면에 금박의 불상이 있는데, 오른 손 끝을 땅에 대고 대오(大悟)의 수인(手印)을 보여주고 있다. 대탑 주위에는 4개의 소탑이 있고, 주위에 높이 2.5m 정도의 석주 92개가 서 있다. BC 1세기경에 세운 것으로, 본생담(本生譚)과 연꽃 등이 조각되어 있다.
BC250년경 아쇼카왕에 의해 금강좌 위에 사원이 건립되어 AD 5세기경 굽타 왕조때 현재의 모습으로 증축되어 진다. AD859년에 다르마팔라왕이 힌두사원으로 건립 되었다가 AD1158 무슬림에 의해 페허가 되었다. 다시 1590년 가만디 기르라 불리우는 수행자가 승원을 건립하였다. 19세기에 대대적으로 고쳐 지은 것이다. 미얀마 왕이 부처님 성도하신 곳의 불교탑이란 소식을 듣고 이곳의 힌두왕에게 엄청난 돈을 주고 이 탑을 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얻고 나서 많은 사람을 보내 현재처럼 복원하고, 미얀마왕은 이곳의 왕과 함께 참배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부다가야 사원 경영위원회가 발족되어 힌두교인 4명 불교인 4명 정부관리 1명이 함께 관리하고 있는데 정부관리인은 반드시 힌두교인이어야 한다.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에서 동편으로 앉아서 새벽 별빛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여 나무 동편에 대탑을 쌓았다고 한다.

2. 성도의 나무 (Bodhi Tree)
마하보디 대탑 서쪽의 자그마한 사원 옆에 서 있는 보리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명상에 잠기고 성도한 나무인데, BC3세기 경 아쇼카왕의 딸 상가미타가 스리랑카의 보리수 묘목을 옮겨 심어 수 많은 일화를 남겼으며, 1876년에 어린 묘목으로 다시 심어 현재에 이른다.
나무 밑에는 부처님께서 좌선(坐禪)을 했던 금강보좌가 놓여 있다. 돌에는 아쇼카 시대의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 있다.

3. 금강좌 : 원래의 금강좌는 사원 안에 모셔져 있었고, 현재의 금강좌는 굽타 왕조 초기에 조성 되었다.

4. 불족적 : 금강좌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부처님께서 첫발을 내디딘 곳에 새겨졌다는 바위. 길이 0.9m의 발바닥 형상에는 애초에는 법륜, 물고기, 챠크라 등의 형상이 있었다.

5. 아쇼카 석주 : 왕으로 즉위한 후 두 번에 걸쳐 이곳을 방문, 코끼리머리 모양 석주를 세움.

6. 반얀나무 :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좌정하고 계실 때 브라만이 찾아와 법을 청해 법구경을 설하심.

7. 무칠린다 용왕못 : 무칠린다라고 불리는 용왕이 부처님을 일곱 바퀴 둘러싸고 그의 머리를 펼쳐 안개와 비바람, 천둥과 번개를 막아주고, 제석천과 범천으로부터 중생들에게 법을 설할 것을 세 번이나 간청받는다.

8. 보드가야 주변의 유적 : 니련선하강 건너의 수자타 집터, 전정각산(등게스와르), 유영굴 등, 가야를 향하는 길목에는 상두산이 있다. 상두산은 코끼리 머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라지기르 (RAJGIR, 왕사성)
바위산에 둘러싸인 견고한 요새 같은 분지이며, 마가다 왕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이 있었던 곳이다. 당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나, 불경에도 나오는 수행의 현장 판다바 산(白善山), 부처님께서 만년에 살았던 그리다쿠타 산(靈鷲山) 등을 볼 수 있다.

1. 빔리사라왕 감옥터
구 왕사성 내성의 가장자리에 위치함. 현재는 사방 60m의 정방형의 터만을 알아볼 수 있게 얕게 돌을 쌓아놓았다. 부처님이 열반하시기 8년 전에 빔비사라 왕은 이 감옥에 갇혀 창문을 통해 영축산을 바라보며 부처님께 예배드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2. 영축산
라즈기리 동쪽 찻타 언덕 남단에 있으며 능선에서 바라보이는 봉우리가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인도에서는 그리드라쿠타라고 한다. 이 산꼭대기에 정사가 지어져 있어 이곳에서 많은 설법을 하셨다고 하나 지금은 여래향실과 시자실의 기단부분만이 벽돌로 얕게 쌓아 복원되어 있다. 성도 후 부처님은 이산에 머무시면서 법화경, 보적경 등 많은 대승경전을 설하셨다. 경전 첫 머리에 나오는 “한때 부처님께서 기사굴 산중에 계실 때 비구 1,250인과 함께 하셨는데” 하는 기사굴산이 바로 이곳이며 염화미소의 일화를 남기신 곳이기도 하다.

3. 죽림정사 (竹林精舍)
마가다 왕국의 빔비사라 왕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께 바친 땅이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부처님은 명상에 잠기고 설법도 하였다. 지금은 그곳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목욕하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온천수가 솟은 곳도 있다. 불교교단의 최최의 정사였으나 지금은 사원터임을 추정할 수 있는 대나무 숲과 카난다 연못만이 남아있다.

나란다 대학터(NALADA)
BC 250년경 아쇼카 왕이 이곳을 찾아 사리프트라의 부도에 경의를 표한 후 그곳에 사원을 건립하였으며 불교의 쇠퇴를 방지키 위해 108개의 사원을 건립하였다.
불교 교학의 중심지 나란다는 AD5세기경에 세워진 최초 최대의 불교대학으로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도 이곳 망고나무 과수원에 머무셨다는 기록도 있다. 이곳은 지혜제일 사리불과 신통제일 목건련 존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5세기경 굽타 왕조때 완전한 대학 규모의 건물이 들어서게 되고 7세기경에 다시 왕조가 바뀌면서 하싸가 증축하고 9세기에는 팔라틴에 의해 증축되었다. 7세기경 현장법사가 이곳에 왔을 때는 학생이 만여 명에 선생이 일천오백 명이였고 하며, 현재 발굴된 것이 전체 규모의 10/1정도라 한다. 무슬림의 침공으로 학교와 승원이 불탈 때 6개월 동안 탔다고 한다. 현재 1km 정도 발굴했고, 그 당시 규모는 10Km 였으며, 인근마을 100여곳에서 음식 등을 공양받아 운영했다고 한다.

바이살리 (VAISALI)
일찍이 리차비족의 도성으로 상업의 중심지였던 이곳에는 빔센 키 라티라는 아쇼카 왕의 돌기둥을 비롯하여 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다. 양모 프라쟈파티가 샤카족의 귀부인 500명을 이끌고 이곳을 찾아 여인의 출가를 청한 곳이며, 화엄경과 사물의 허망함과 공성을 강조한 반야사상의 유마경을 설하셨던 곳이다.
아쇼카 왕이 벽돌로 쌓은 스투파의 유적과, 원숭이가 파서 석가모니에게 시주했다는 연못 라마쿤드 등이 있으며, 출토된 유물은 고고학 박물관에 소정 되어 있다. 석가모니는 이곳을 자주 방문 했는데, 마지막 방문 때에는 불교에 귀의한 부유한 창녀 암파발리의 저택에 머물면서, 그녀가 울리는 공양을 받았다고 한다. 신분의 구별 없이 불법을 편 석가모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부처님께서는 3개월후 입멸에 드신다고 예언을 하고 아난다와 쿠시나가르를 향해 떠나신다.

쿠시나가르 Kushinagar
부처님의 입멸지인 쿠시나가르는 라즈기르에서 마지막 안거를 보내시고 3개월 동안 아난다와 등창에 시달리며 25번을 쉬시며 오신 곳이다. 이곳 쿠시나가르에서 부처님은 대장장이 춘다의 수크라 맛따바(돼지고기요리의 일종)라는 요리를 공양 받고 심한 설사병을 얻어 히라야바티 강에서 마지막 목욕을 하시고 사라쌍수 아래 머리를 북으로 향하게 하고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에게 법을 전하고 열반에 드신다.

1. 아쇼카 스투파 : 높이 60m로 원자력 발전소 모양으로 증축 현재에 이르고 있다.열반당 옆에 아쇼카왕이 세운 열반탑이있다. 발굴당시 에도 정상부를 포함해 45m나 되는 거대한 탑이였다고 한다. 이 탑 위에 허물어진 작은 규모의 유적지는 부처님을 25년간 시봉했던 아난다의 사리탑이라고 한다.

2. 열반당 : 부처님께서 누워 열반에 드신 자리이다. 벽돌로 만든 큰 정사 안에 여래의 열반상이 있던 유적은 없어지고 지금의 열반사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5세기초에 하리바라 신자의 기부금으로 조성된 것이라 한다. 열반상 기단 부에는 부처님 머리 쪽에 슬픔에 젖어 있는 프라세나짓왕의 부인 말리카 왕후가 조각되어 있다.

3. 대반열반탑(라마브라하 스투파) : 부처님 다비장. 열반 후 7일이 지나자 말라족들이 부처님의 시신을 열반사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전륜성왕과 같이 장례식을 치뤘다고 한다. 이곳에서 화장이 되고 남은 부처님의 사리는 8군데로 나누어지고, 재와 사리를 담은 병까지 탑으로 모셔지게 된다.

쉬라바스티(사위성, 사헤트․마헤트) ­ 교화의 중심지

1.기원정사 (祇園精舍, 사헤트)
인도말로는 “베다바나”, 즉 “제다의 숲”이라고 한다. 제다 태자가 제공한 숲과 급고독 장자가 세웠다 고하여 “기수급 고독원”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줄여 기원정사가 된 것이다.
쉬라바스티의 부호였던 수닷타 장자는 아들의 혼삿일로 라즈기르에 갔다

가, 죽림정사에서 부처님의 법을 듣고 부처님께 귀의 해서 코살라국의 수도 쉬라바스티에 꼭 와줄 것을 간청한다. 수닷타 장자는 쉬라바스티로 돌아와 장소를 물색하던 중 제타태자의 제타바나 동산을 찾아 정사 건립에 들어간다. 그러나 제타태자는 황금으로 동산을 깔아준다면 동산을 팔겠다는 말을 한다. 이에 수닷타 장자는 황금으로 동산을 깔기 시작, 이에 감동한 제타 태자는 황금을 깔지 못한 부분은 태자 자신이 부처님께 기증하여, 이곳에 불교 교단의 2대 정사인 기원정사를 건립하였다. 남복457M, 동서 152M 에 승원 유적지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곳에서 24회의 안거를 지내시며 현존하는 경전 가운데서 70%를 설하시게 된다.

2.사위성 (舍衛成, 마헤트)
사람을 죽여 손가락을 잘라 모으던 앙굴리말라가 석가모니에게 귀의한 설화의 무대이자, 석가모니가 기적을 보여준 곳이다. 사헤트 북동쪽 약 600m 지점에 있으며, 기록에 의하면 사위성안에는 궁성 건물터와 프라세나짓 왕이 부처님을 위해 세운 대법당 터와 수닷타장자의 집터, 앙굴리말라의 집터 등에 스투파가 세워졌다고 하는데 현재 앙굴리말라의 탑터와 수닷타장자의 탑터만 발굴되었을 뿐, 그 외의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룸비니(Lumbini)
네팔과 티베트의 경계는 8,000m 이상 되는 큰 산맥이 가로막혀 있다.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평원을 이루어 룸비니 지역에서는 산을 볼 수 없다. 바이라 하와에서 오른쪽으로 4km떨어진 곳에 로히니 강이 흐르고 있는데 이 강을 경계로 카필라성과 콜리성의 대바다와(마야부인고향)이 위치하고 있다. 한참 가물었을 때 이 강줄기 때문에 두 나라가 전쟁 직전까지 갔으나 부처님이 말리신 기록이 남아있다. 네팔에 위치한 부처님탄생지 룸비니는 불교성지 중에서 제일 먼저 황폐화되었던 것 같다. 현장스님이 왔을 때 이미 폐허가 되어 완전히 정글로 덮여 있었다고 하였다.

1. 마야데비 사원 (Mayadevi Temple)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난 곳을 둘러싼 성원(聖園) 안에 있는 사원이다. 최근에 복원한 사원이 있는데, 신발을 벗고 당내로 들어가면 석가모니 부처님 탄생을 주제로 한 석상이 서 있다. 마멸되어 잘 보이지 않음.

2. 아쇼카 석주
아쇼카 왕이 즉위 20년 되는 해(B.C. 250)에 이곳에 와 세우게 했다는 석주이다. 1895년 룬민 디 사원을 발굴할 때 발견된 것인데, 석주는 중간이 부러져 있다. 석주에는 이 마을에서 위대한 분이 탄생하였기에 이 마을은 세금을 면제하고 생산물의 8/1만 징수하라는 기록이 새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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