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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년 올린 글

제목 야반삼경의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
글쓴이 도반사이 조회/추천 17/0
야반삼경의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복은
화두를 이용한 간화선입니다.

화두는 깨달음을 이룬 스님들이 깨달음과 관련해서
한 말과 행동을 말하는 것인데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는 동문서답입니다.

예를 들어
190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지식이었던
경봉 스님께서
“어떻게 하면 깨달음을 엊을 수 있는가?”하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
“야반삼경夜半三更의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화두라는 것이지요.

* 야반삼경夜半三更 뜻

야반과 삼경의 복합어로 야반은 밤중(한밤중),
삼경은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셋째 부분,
밤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


간화선을 한다는 것은
‘화두를 딘다.’는 것인데
‘화두를 든다.’는 것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길을 가나
화두를 생각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야반삼경夜半三更의 대문 빗장을 만져 보면
깨달음을 얻을 것 같습니까?

이렇게 해서 깨달음을 얻을 것 같으면
집집마다 대문 빗장이 넘어나질 않겠ㅈ;ldy.

경봉 스님 말씀은 말 그대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같은데
문제는 왜 그런 말씀을 하셨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심에 대해 생각을 집중해서
자기 자신도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을 하면
어느 순간 마침내 그 비밀을 풀고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화두를 타파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방법을 통해
깨달음을 이룰 확률이 낮다는 것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의 많은 스님들이 화두선을 수행했지만
깨달음을 이루어 선지식이 된 사람은
수천 명에 한 명 정도밖에 되지 않다는 것이지요.

이 점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자들이
화두선의 병폐로 지적하는 것입니다.

화도를 들어 수행이라는 것이 잘못된 방법이기 때문에
수행자들이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것이지요.

반면에 위빠사나 수행하면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일정한 수준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 수행법은 부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것이기 때문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화두를 이용한
수행법에 비하면 100% 믿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위빠사나 수행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장담을 하는 것일까요?


* 위빠사나(vipassana)

위빠사나(vipassana)라는 말은
‘ 위’와 ‘빠나사’라는
두 개의 단어가 합쳐서 만들어진 것인데,
‘위’의 뜻은 ‘
모든 존재는 결국 소멸해 버리기 때문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며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이나 나무,
나아가 흙이나 바람까지도 근본적으로
고통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빠나사’의 뜻은
‘자세히 살펴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위’와 ‘빠나사’가
합쳐진 ‘위빠나사’는
‘존재를 자세히 살펴,
존재는 고통을 받고 있으며
결국 소멸해 버리기 때문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지요?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제법무아’이고
‘고통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일체개고’이지요.

‘모든 행위가 덧없는 것이다.’는
제법무아에서 나오고 그래서 일체개고니,
이도 위빠사나에 포함 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위빠사나 수행이라는 것은 삼법인에 대해서
잘 생각해서 번뇌의 불길과 그로 인한
고통이 사라진 ‘열반적정’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위빠사나, 어떤 것인지 이제 아시겠지요?

위빠사나 수행의 세부적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보아 ‘대상에 대한 관찰’이 공통된 방법입니다.

수행자는 우선 조용하고 깨끗한 곳으로 찾아가
가부좌를 틀고 하고 앉아서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위빠사나를 합니다.

몸을 관찰하며
‘이 몸은 언젠가는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며
이런 몸이 하는 행위는 덧없는 것이니
이는 괴로운 것일 뿐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하는 대상을
우주의 모든 존재에게까지 확대해 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생각에 떠오르는 대상이 있으면 거부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그 대상을 관찰하면서 위빠사나를 하는 것이지요.
이런 상태가 되면 마음은 편안하게 되고,
관찰하는 대상은 그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때 수행자는
그 대상에 대한 여실지견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위빠사나 수행법이라고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해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괴로운 근원이 되는 몸을 버려야 한다며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이 집착헤서 오고
그 중에서도 특히 몸에 대한 집착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몸에 대해 부정하는 수행부터 하게 한 것입니다.

이런 수행을 부정관不淨觀이라고 하는데,
제자들의 오해로 부작용이 생기자
수식관數息觀으로 바꾸게 하셨습니다.

수식관數息觀 이란
호흡의 들고 남에 마음을 집중해 위빠사나를 하는 것이지요.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여 그것을 세다 보면
잡념이 사라져 마음이 안정됩니다.

이 상태에서 위빠사나를 하게 되면
목숨을 버리는 그런 황당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 약점은
위빠사나 수행의 경우 죠용하고 깨끗한 장소에서
수행을 계속할 때는
그 마음이 도달한 경지를 유지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는
그 경지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자, 화주선과 위빠사사 수행법 중
여러분은 어느 방법이 좋은 것 같습니까?

성공확률은 낮지만
크게 성공할 수 있는 화두선이 좋습니까?

아니면 작게 성공하지만
확률이 높은 위빠사나 수행법이 좋습니까?

아마 모두 화두선을 택하거나
모두 위빠사나를 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처럼
각자의 정신적 수준인
근기에 맞는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화두선이란
한 번에 모든 과정을 건너뛰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화두를 들만한 정신적 수준이 아닌 사람들은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그 수준을 높인 다음에
화두선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요.

여러분의 경우 회사에서 일을 하거나
집안에서 가사를 돌볼 때는 화두를 들수 없어
지속적으로 화두를 드는
스님들 보다는 효과가 크게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마음먹고 앉으면
곧 일정한 마음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
위빠사나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인도나 동남아 사람들에게 적합한 방법이지만
부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방법이므로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으실 겁니다.

화두선이 좋다,
위빠사나다 좋다, 는
편견으로 수행하시는 것은
올바른 수행자의 행이 아니십니다.

차후 이 시간 이후로는
각자의 근기에 따른 수행법으로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자신의 근기에 낮는
수행법을 선택하자는 말씀을
따끈따끈한 글 조각을 올렸습니다.

2022년 01월 02일 오전 06:51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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