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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년 올린 글

제목 우리의 삶이 인생이다.
글쓴이 도반사이 조회/추천 46/0
우리의 삶이 인생이다.



보살님들 가운데 대부분은
‘살아온 것만을 이야기 한다 하더라도
소설책 한 권은 충분히 될 수 있다’고들 하실 겁니다.

이 기회를 빌어서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 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구라고 하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지배적 위치를 갖게 된 것은
지구의 역사에 비해 아주 짧지만,
인간 스스로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칭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 왔습니다.

수없이 많은 생명체와 공생공존하면서도
다른 생명체들에게 때로는 자비와 용서를 배풀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괴롭힙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고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사용해 가면서 미화시켜 왔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다른 생명체의 내력보다 우위에 있기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삶,
인생人生인 것입니다.

인생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그 본질을 밝히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고,
또한 앞으로도 멈추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기록되고 누적되어 역사를 이룹니다.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옛날 어떤 나라에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은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일까’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고 학자들에게 연구하라고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학자들은
그간 연구한 모든 자료를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많은 양이어서
이미 늙어가고 있는 왕으로서는
그 자료를 본다는 것이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다시 그 자료를 간단하게 줄이라고 말을 합니다.
또 몇 년이 지난 후 학자들이 한 권의 책을 가져왔을 때
왕은 이미 늙어 기력이 대해서
그 한 권의 책조차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인생을 표현하라.”하고 말합니다.

학자들은 잠시 외논 한 후 왕에게 말합니다.
“사람이 태어나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어가는 것입니다.”하고
왕은 빙그레 웃으며 “아, 그렇구나....”하며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인 것입니다.

불교에서 인생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안수정등岸樹井騰’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무서운 코끼리가 나타나 쫓아 옵니다.

정신없이 도망치다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그 우물 속에는 나무덩쿨이 늘어져 있습니다.

그 사람은 동쿨을 잡고 우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의 숨을 채 내쉬기도 전에
그는 다시 ‘죽었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물 밑에는 사나운 용이 입을 벌리고
그가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고,
둘레에는 네 마리의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밖에는 코끼리가 지키고 있으니 나갈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어서 그 순간이 지나길 간절히 바라며
나무 넝쿨만을 쥐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설상가상으로 어디선가 흰쥐와 검은쥐가 나타나서는
그 나무덩쿨을 갉아대기 시작합니다.

곧 꼼짝없이 죽을 판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위에서 꿀이 떨어져 그의 입술에 닿았고
그는 달콤한 꿀 맛에 취해 자신의 처지를 잊고 맙니다.

여기서 광야를 가는 사람은 중생의 모습입니다.
고독한 모습이지요.
세상에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혼자서 가야만 하는 인생길입니다.

광야는 중생들이 윤회한다는
하늘세상[天上], 인간[人間], 아수라[阿修羅],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의 육도를 말합니다.

무서운 코끼리는 목숨을 앗아가는 살귀殺鬼이고,
우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며,
네 마리의 뱀은 우리의 몸을 사대[四大],
즉 지地, 수水, 화火, 풍風입니다.
나무덩쿨은 중생들의 생명줄을 말하고,
흰쥐와 검은쥐는 낮과 밤의 시간을 말하며,
꿀은 중생들의 앞에 펼쳐진 오욕락五欲樂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맞는 것 같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살귀는 시시각각 나를 쫓아옵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죽음의 위협은 갈수록 커져만 갑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주변에 친지나 아는 이가 죽으면
그때가 되어서야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일 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란 말처럼
자신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착각하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는 것[常]외에도
즐거움의 착각[樂],
존재의 착각[我],
깨끗함의 착각[淨]이 더 있습니다.
아니, 망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이 바로 이것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생자필멸生者必滅은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고,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게 되는 변치않는 사실을 말합니다.

아주 위중한 벽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경우
‘사형선고를 받았다, 시한부 인생이다.’하고 말합니다.

무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며
그 사람이 어리다거나 젊다면 혀를 차면서
무척 안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착각입니다.

이렇게 시한부 판정을 받은 병자뿐만이 아니라
인간은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기간이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그 차이란 것도 영겁에 비추어 본다면
전등불 앞의 반딧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렇듯 인생은
무상無常하고 제행諸行은 무상인 것이며
제법諸法이 무아인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내일 다시 이어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따끈따끈한 글 조각은 여기까지입니다.

2022년 01월 06일 오전 06:42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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