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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년 올린 글

제목 흔들림 없이 나아가라.
글쓴이 도반사이 조회/추천 17/0
흔들림 없이 나아가라.



이런 수행이 말같이 쉽지 않습니다.
몰라서도 못 닦지만
알고도 닦기 어려운 것이 수행입니다.

더구나 오늘날같이 복잡다양한 세상에 살자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도 주변에서 가만히 두질 않으니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일조차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용히 있고 싶어도 여기저기 유혹도 많고,
어쩔 수 없이 어울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승도 그걸 잘 알지요.

또 자칫하면 삿된 길로 빠지기도 쉽습니다.
지혜가 밝지 못해 정正, 사邪를 분별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어느 절은 기도가 잘 되고 영험하더라,
어느 절은 도인이 계시더라,
이러저러하게 되면 대학에 합격한다더라,
이렇게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더라 하고 부추기기도 합니다.

이런 경經이 있습니다.
⟪아갈비阿碣毘⟫라는 경經인데 ,
비구니가 고요히 좌선 하고 있을 때
악마가 마음을 흔들어 사색을 방해하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슈라바스티에서 걸식을 마치고 돌아온 아알라비카 비구니가
안다숲에 들어가서 좌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마왕 파피야스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몬 고타마의 제자 아알라비카 비구니가
좌선하고 있으니 내가 가서 방해해야겠다.’

곧 용모단정한 젊은이로 변신하고
비구니 앞에 나타나서 게송으로 말했습니다.

“이 세상을 벗어 날 길 없느니
멀리 떠나기를 바란들 무엇하랴.
뒷 날 후회할 일 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서 오욕이나 즐기시게.”

그러자 아알라비카 비구니는
‘누가 나를 두렵게 하려는 것일까?
이 젊은이는 사람인가 아닌가.
간악하고 교활한 사람이 나를 해치려는 것일까?’라고
생각하다가 곧 판단하는 지혜가 생겨 ‘아니다. 이는 악마가 나를 훼방하려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게송으로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벗어나는 길이 있어
나는 그 길을 찾았다.
미련하고 천한 악마여,
너는 그 길을 알지 못한다.

날카로운 칼로 헤집듯이
오욕도 우리를 헤집어 놓고
날카로운 칼로 설덩이를 베듯이
오욕도 우리를 자르느니
네가 즐기라고 말하는
다섯가지 욕망
그것은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크게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모든 즐거움과 기쁨 이미 떠나고
갖가지 어둠도 다 버리고
모든 것이 멸했음을 몸으로 증득하면
번뇌 다하여 편안히 사느니

나는 네가 악마라는 것을
이미 알았으니 어서 사라지거라.”

악마 파피야스는
“저 아알라비카 비구니는 내 마음을 이미 일았다.”면서
이네 사라졌습니다.

우리 범부들은
순간순간마다 마음 속에 크고 작은 갈등을 겪습니다.

점심에 국수를 먹을까?
밥을 먹을까?
지금 나설까?
차를 한잔 마시고 갈까?

이런 하찮은 갈등을 비롯해서
노름판에 갈까?
이 회사 주식을 살까?
저 회사 주식을 살까?저 여인과 결혼할까?
이 여인과 결혼할까?

항상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는 것이 범부들입니다.

그래서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생각[正念], 바른 정신[正定]으로
확고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단단히 마음의 무장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경에 이어 파피야스의 방해에 대응하는
비구니에 관한 경이 ⟪잡아함경⟫ 45권 앞쪽에
집중적으로 편찬으로 되어 있습니다.

파피야스는 어떻게든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해서
악으로 향하게 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파피야스의 훼방에 대응하는 상대가
비구니로 나오지만 이는
모든 수행자 더 나아가서는
세존의 가르침을 배우고 닦으려는
모든 사람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모든 범부 중생이
다 똑같이 파피야스의 표적인 것입니다.

바늘구멍만한 틈만 있으면
지체없이 파피야스가 파고듭니다.

실낱같은 파피야스의 손길은 날이 갈수록 굵어져서
마침내는 내 마음과 몸을 통째로 삼켜 버린 것입니다.

세존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하고 닦지 않으면
통째로 먹힌 다음에야 땅을 치고 탄식하게 됩니다.

따라서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세존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모든 내 이웃의
행복과 안락을 위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입니다.

불교는 스스로 닦는 종교입니다.

저 건너 언덕에 가려거든 가는 법을 배워서

스스로 뗏목을 저어야 합니다.
누가 건네주지 않습니다.

내가 하기에 따라
저 언덕에 이를 수도 있고 건너지 못하고
이 쪽에서 서성거리다가 세월만 축내고 말 수도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저 언덕에 이른 자여, 행복하라!”

오늘의 따끈따끈한 글 조각은 여기까지 입니다.

2022년 01월 08일 오전 06:21분에
창녕군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雲月野人 진각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