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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토굴 사진] 이렇게 불사 하다가... 등록일 2023.10.08 07:13
글쓴이 雲月野人 조회/추천 35/0
지난 2016년 10월,
아무것도 없는 4층 건물을 구입하여
계획은 1층에는 종무소,
2층에는 전시실겸 작업실,
3층에는 법당,
4층에는 처소로 계획을 세우고
재단을 짜고 맞추고 다듬고  40평을 
법당 만들면서 그렇게 다 되어갈 즈음
[뇌동맥류]로 인하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뇌동맥류]는 완치가 되어도 83%는 장애를 갖는다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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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충 부터 4층까지 
오르 내리며 힘들게 불사에 정열을 다 쏟아 버렸던가 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어...어."
실어증으로 인하여 말 단어 조차 잃어 버렸고.
말 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하나 "어....어...어"


BandPhoto_2019_01_28_12_56_17.jpg

내 손으로 홀로 작업하면서 행복했었고
매일매일이 환희에 젖어 들다가 조금 급하게 쉬지 못하고
곡기도 잊고 일에만 몰두 하다 보니 그럴만 했습니다.

홀로 1층 부터 4층을 모두 손수 작업하다 보니
어떤 몸뚱아리라고 견뎠겠습니다.


BandPhoto_2019_01_28_12_56_21.jpg

재단도 손수 목재로 만들어서 다듬고 그랬는데
부처님께서 호되게 꾸짖어 주신겁니다.

제발 한 탬포 늦추라고 하신거죠.
그러니 7년 세월을 재활로 이겨냈고
지금은 완전히 돌아 온 몸으로 되었습니다.


BandPhoto_2019_01_28_12_56_24.jpg

이 법당은 오래도록 잊지 말라는 의미로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BandPhoto_2019_01_28_12_56_32.jpg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들은
"어...어", 그리고 숨만 쉬고 겨우 한 발 한 발 떼는게 고작.

기억도 사라졌고, 
계산도 할 수 없었고,
심지어 은행에 가더라도 비밀번호 네 자리도 못 누르니
머리가 안 되니 몸이 따라오지 못하는 거였습니다.

설령 직원분들이 도와 주신다 하더라도
돈을 찾아서는 돈을 질질 흘리고 
계산도 하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답답한 것이 아니더라는 겁니다.
뇌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니
마냥 허허실실인 것입니다.

그것 뿐이겠습니까?
미각도 잊어 버려서 그 매운 청량고추도 
한 개를 입에 접어 놓고 오물오물 그러면서 맛을 모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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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는 2개를 짚고는 다니지만
구름위로 걷듯이 발걸음이 사뿐사뿐 한 겁니다.
바람이 불면 몸이 흔들릴 정도로 
173Cm 몸이 47Kg 몸으로 수축하였으니
걷는 것 조차도 버겁고 유치원생 처럼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면 무서워서 덜덜 떨곤 하였지요.

그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겨울(1월)이었는데 어떻게 지냈는지
아무도 무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홀로 지냈으니 병원을 나와서 보니 겨울이라
화장실도 물이 얼고 식수도 없었고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보냈는지 아직까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행히 4월 지나면서 자O심 댁 부부가
4층으로 이사 오시어 케어 해 주시면서
장애인분들 보살피는 일을 포기 하시고 승에게 
교대로 나를 잘 관리해 주신 것으로 처음 1년은 그렇게 잘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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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머리가 천천히  옛 기억으로 하나씩 돌아 오면서
이제 무엇을 하는지, 내가 어찌해야 하는지 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움직일 정도 되었으니
홀로서기 해 보겠다고 이 건물을 포기하고
음성군으로 시골주택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병원과장님 말씀이 
민가 속으로 들어가서 사람들하고 어울리다 보면
말문도 틔일 것이고 기억도 돌아 올테니 시골로 가는게 어떻겠냐고 하여
음성군 생극면으로 시골집을 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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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홀로서기였습니다.
그것은 홀로서기가 아니었습니다.

매일 사고가 터지는 연속이었습니다.
국을 끓여서 밥상으로 옮기는데 쏟아 버리기 일쑤였고,
끓인 국 냄비를 손으로 덥석잡곤 하였습니다.

발이 화상입기를 수십번 끝이 없는 실수로 인하여 힘들었고,
때론 빈 속에 감기약을 먹고 약에 취하여
방문 안의 계단 2칸을 못 걸어 꼬꾸라져서 
집 구석에 박혀있다가 정신 차려 일어 나곤 했죠.

홀로서기라는 말은 
우리가 하기 좋은 단어고 실지로는 홀로서기라는 것은
정말 아무것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 일어서는 것임을 알게 되었죠.

말이 홀로서기였지,
그 홀로서기는 그냥 홀로서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는 혹독한 나와의 싸움이었습니다.

이겨서 예천처럼 살아 갈 것이냐?
아니면 장애로 살아갈 것이냐? 

거기서 나는 예전처럼 살기로 다짐하고
그때부터는 나와의 싸움을 4년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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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건물하고 나를 바꾼 것입니다.

누구가 시련은 오고 지나갑니다.
저 같은 경우는 "뇌동맥류"라고 하면
완쾌되어도 83%의 사람들은 장애를 갖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17% 속으로 들어가서
예전 처럼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독심을 먹고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낸 케이스라고 합니다.

장애로 살래?
아니면 이겨볼래?

어떤 선택이 가장 좋은 방법인가?

우리는 그렇습니다.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에 따라서 
훗 날 어떻게 목적지를 만나는가에 따라
일생의 판도가 달라는 것을 많이 보고 보았습니다.

나하고 싸움을 하지 않았으면 게을렀을 것이고
장애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과정은
말로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이었지만 
다시 예전의 몸으로 돌아 왔다는 기쁨이 남았습니다.

저 사진은 나에게 많은 시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시는 무리한 불사를 하지 말라고
부처님께서 한 탬포 쉬어라 가라고 멈추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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